<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참, 멀리 왔습니다.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할 수 있는 틀이 짜일 때까지만 소임을 다 하면 제발 면탈시켜 달라는 청을 처음부터 드렸습니다.
그 분과의 눈물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저는 퇴장합니다.
저에게 갖고 계신 과분한 관심을 거둬달라는 뜻에서, 언론인들에게 주제 넘은 이별인사를 드립니다.
오래 전 그 날, 그 분을 모시고 신세계 개척을 향한 긴 항해에 나섰습니다.
풍랑과 폭풍우를 묵묵히 헤쳐온 긴 여정 동안 그 분은 항상 강했습니다. 당당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그 분에게서 단 한 번도 비겁하거나 누추한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분 곁에 늘 함께 한 것은 평생의 영광이었습니다.
머나먼 항해는 끝났습니다.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줘야 새 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합니다. 그 분이 정권교체를 이뤄주신 것으로 제 꿈은 달성된 것이기에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간곡한 당부 하나 드립니다. 우리는 저들과 다릅니다. 정권교체를 갈구했지 권력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을 찾아 헤맸지 자리를 탐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비선이 아니라 묵묵히 도왔을 뿐입니다. 나서면 "패권" 빠지면 "비선" 괴로운 공격이었습니다.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 친노 프레임이니 삼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비선도 없습니다. 그 분의 머리와 가슴은 이미 오래 전, 새로운 구상과 포부로 가득 차 있습니다.
멀리서 그분을 응원하는 여러 시민 중 한 사람으로 그저 조용히 지낼 것입니다.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양정철
# 양정철을 안 것은 2011년인가 문재인의 운명이란 책이 나왔을 때였다. 물론 그 전에 이름은 들어봤지만 눈여겨 보지 않았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운명처럼 뜻을 이루었고 그 벅찬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양정철이 떠난다는 소식이다. 사람은 뚜렷한 자기 주관이 없을 때 상대를 물고 늘어지게 마련이다.
현재 자유한국당이 틈만 보이면 여당의 약점을 찾아 공격하는 것도 자신들의 확실한 색깔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문재인 주변 사람들이 좋은 먹이감이다. 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질 빌미를 제공하지 않게 처신을 잘해야 한다. 양정철도 자신을 버림으로 문통을 돕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누구든 완벽할 수 없는 법,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듯이 흠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번에 양정철을 제대로 안 것은 정말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편지 한 장 분량의 이 문장에 그의 가치관이 전부 들어있다고 해도 되겠다. 글과 성품이 똑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글이란 당사자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법, 그를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던 사람들 맥이 빠지게 생겼다. 어라? 이게 아닌데? 하면서 과감히 내던진 그를 다시 보는 사람 많을 거다.
역사를 들춰봐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뒤집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양정철은 적어도 그런 사람이 아니다. 뜻을 이루었으니 퇴장한다는 말이 참 가슴에 다가온다. 자고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했다. 문통도 양정철도 참 멋진 사람이다. 사람에게서 향기가 나는 것을 모처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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