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우주로 가는 당나귀 - 우대식

마루안 2017. 1. 10. 06:30

 

 

우주로 가는 당나귀 - 우대식


가고 싶은 곳 : 우주
까닭 : 우주에 가서 지구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2학년짜리 막내 아이의 숙제다
우주는 어디에 있는가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서
저무는 지구의 황홀한 일몰을 보고 싶다
한 남자를 탐하는 한 여자의 저녁을,
긴 상을 맞붙인 대가족의 공양을 보고 싶다
꺼져가는 장의사의 노란 불빛과
막 쪄낸 시루떡의 하얀 김,
미시령을 몰려다니는 눈발을 보고 싶다
어느 겨울 시골 마을
불 켜진 낮은 집에 엎드려 숙제를 하는 내 아이의
뒷모습도 보일 것이다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는 당나귀는
며칠을 걸으면 우주에 당도하는가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


*시집, 단검, 실천문학사


 




詩人 - 우대식

잉크는 새것이 한 병 새벽 우물처럼
충충히 담겨져 있것다
-이태준, <까마귀>에서

 

 

헛되고 헛되다
내 안의 포도주가 헛되고
밤거리의 주막도 헛되다
원주에서 신림으로 가는 첩첩 산도 헛되고
폭풍 전야의 저 구름도 헛되다
어린 날 시골 분교의 방과 후
슬프고 깊은 풍금 소리 양식 삼아
시인이 되었지만
한낱 떠도는 자의 운명으로 태어났으니 헛되다
하여,
내 안에 먼 기슭을 돌아와 헤엄치는 물고기도 헛되다
숨도 안 쉬고 저 강과 산을 건너고 싶다



 

# 우대식 시인은 1965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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