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공중변소에서 - 김중식

마루안 2017. 1. 9. 21:09



공중변소에서 - 김중식

 
 
나는 요즘 참을 수 없는 일이 없고
심지어 그 말까지 참을 수 있는
어른이다. 기다림 끝, 선생이다
나의 정체성은 곧 당신들의 고통!
최후, 최후까지 참을 수밖에 없는 당신들의 수고가
더 이상 나의 상처가 되지 않는
딱딱한 발바닥이다. 냄새 나는
자리일수록 입맛 다시는
목구멍이다. 생활이다. 굵고
짧은 生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끙!
소리는 침묵이다. 놈들에 대하여
힘만 주고 아무 말 못 하면서
아무 말 못 해놓고 할 말 다하는 사설이다. 세월아
놈들이 나를 얼마나 구겼기에 내가 이렇게 부드러워졌느냐, 하는
정직한 자책은 아양이다. 가면이다
수염이다. 어느 날, 어른이다
은밀한 곳에서만 갑자기 털이 자라고
참아야 할 일들만 못 참는 척하는
못 참을 일들만 참고야 마는
변비다. 당신들과 놈들
양쪽이 모두 징그러워하는 기생충이다.

 


*시집,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

 

 





 

나비를 추억함 - 김중식

 


그녀는 소시적부터 처세술에 모범을 보이신 몸이셨다
난세의 시인처럼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번데기
애벌레의 모습으로 은둔하여
쓰레기 같은 세상이
치근덕거리지 않도록 처신했으니 말이다
그녀는 또한 영웅에 가까운 몸이셨다
卵生(난생) 설화를 가졌고
미운 오리 새끼들이 그냥 미운 오리 어미들로 돼버렸을 동안
관 크기의 어둡고 축축한 지하방에서
色과 향기의 유혹을 참아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聖人에 가까운 몸이셨다
어느 날, 관 뚜껑을 박차고 나왔을 때
오 황금빛 날개
입맞추는 자리마다 오
꽃이 피어나도다
꽃이 피어나도다
그것은 거의 부활, 기적의 변신


그때부터 그녀는 春畵圖(춘화도)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