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동사서독(東邪西毒) - 김유석

마루안 2016. 9. 8. 23:54

 

 

동사서독(東邪西毒) - 김유석

 

 

 

유혈목이가 삼키던 두꺼비를 꾸역꾸역 게워내고 있다.
독으로도 삼키지 못하는 독


삼킬 때보다 더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몸에 두른 곡선을 ㄱ자로 마디마디 꺾어가며
두꺼비의 윤곽을 조금씩 목구멍 쪽으로 밀어 올린다.


독으로 삼킨 독


잘못 삼킨 먹이를 토해내는 듯하지만, 실은
두꺼비는 독이 있다, 는 것을 알고 삼킨 것


독으로 맞서는 독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달아남을 먼저 몸에 익힌 두꺼비가
기꺼이 잡아먹힘을 선택한 까닭을 배우게 된 유혈목이는
두꺼비 몸에 주입시킨 자신의 독까지 뱉어내고는
마른 꽃대처럼 뻣뻣해져버린다.


또 다른 독으로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독

 

 

*시집, 놀이의 방식, 문학의전당, 2013년

 

 

 

 

 

 

감자 - 김유석

 

 

나는 감자라 불리는 감자다.
나는 쥐뿔이자 감자 먹이는 주먹이다.
통화나물목 가지과의 구황식물이기 전
삶거나 굽거나 기름에 튀겨지는, 그러므로
뜨거운 감자다.


뿌리도 열매도 아닌 것, 그저 곁가지의 변종일 뿐인 나는
선천성 햇빛 알레르기를 타고나
두엄 내 나는 바닥을 가볍게 품는다.
구렁이의 알과 한통속 같아서
내 고장 잉카에선 땅의 알이라 불리기도 했으나


당신이 먹고 있는 그 속에 구렁이는 없다.
원래 혀끝을 쏘는 듯한 맛이
뱉어내지도 삼킬 수도 없는 뜨거운 맛으로 바뀌었을 뿐


내가 꽃을 피우는 것은 독을 가졌다는 증거
당신이 일용할 만큼의 독만을 남긴 채
애꿎은 기생나비들이나 꼬여 먹이다가
나머지는 스스로 시들어가는 일에 쓴다.


나는 한해살이풀,
나의 독은 씨눈을 틔우지만
독 때문에 스스로 썩어버리기도 한다.

 

 

 

 


# 김유석 시인은 1960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전북대 문리대를 졸업했다.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상처에 대하여>, <놀이의 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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