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 저녁의 흐느낌처럼 - 이성목

마루안 2016. 8. 29. 07:51



그 저녁의 흐느낌처럼 - 이성목



어둠에 등을 대고 부음을 듣는다
목덜미를 스쳐 어깨를 넘어가는
울음은 주름살 사이에 고여도 깊다
그렇게 떠날 것은 무엇인가
기별을 꽃처럼 전할 것은 무엇인가
맺혔다가 풀리고
풀려서 수런거리는 강물이
한 몸을 받아 철렁 내려앉은 봄날
낮고 아득한 흔들림에 귀 기울이는데
꽃잎 한 장 이마를 짚는다
그 찬 손에 화들짝 깨어나면
얼굴 가득 번지는 열꽃
붉게 피었다 져도 나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 듯도 하건만
사는 일이 이렇게
어둑해질 것은 또 무엇인가
당신에게 살을 섞어도 모를
나는 누구냐고 자꾸 되물으며 여자가
아이를 지우고 돌아온
그 저녁의 흐느낌처럼
아파서 손 댈 수도 없는
멍이 배에 가득 번지는 것처럼



*이성목 시집, 노끈, 애지








노끈 - 이성목



마당을 쓸자 빗자루 끝에서 끈이 풀렸다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의 갈래가 많았다
생각을 하나로 묶어 헛간에 세워두었던 때도 있었다
마당을 다 쓸고도 빗자루에 자꾸 손이 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른 꽃대를 볕 아래 놓으니
마지막 눈송이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들어
남은 향기를 품고 사라지는 걸 보았다
몸을 묶었으나 함께 살지는 못했다
쩡쩡 얼어붙었던 물소리가 저수지를 떠나고 있었다
묶었던 것을 스스로 풀고 멀리서 개울이 흘러갔다





*시인의 말


단수 예고가 있던 늦은 밤, 범고래 한 마리 수도꼭지에 입을 들이대고 등에서 세찬 물소리를 뿜어 올립니다. 꾸륵 꾸륵 싫은 소리를 내며 개수대에서 물이 내려갑니다. 아무래도 나는 반골이거나 불평불만분자인 것 같습니다. 삶이 고단하게 틀어막았을 마개를 기어이 뽑아 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작은 구멍 속으로 어떻게 고래가 쑥 빨려 들어갔을까요.


후회는 한 시절 늦고 반성은 뜨뜻미지근하여 나는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