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 김점용

마루안 2016. 8. 12. 08:03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 김점용


무주암 2km 이정표를 본 건 확실했다
일주문 대신 대입 합격 백일기도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름도 이상한 무폭포를 지나 한참을 가도 암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십 분 이면 나온다 하고
어떤 사람은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 했다
늦단풍 사이로 비구가 걸어 내려왔다
벌써 털신을 신었다 어디선가 풍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가도 가도 암자는 나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이는 다 왔다고 저 고개 너머라며 내게 돌 하나를 주었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이 왔다고 되돌아가라며 그 돌을 빼앗았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사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한 사람은 오래전에 불타 없어졌다며 돌을 멀리 내던졌다
한 사람은 백 년이 걸려도 당도하지 못한다며 돌 하나를 가슴에 품었다
또 한 사람은 아무 말없이 내 앞에 돌 하나를 조심 조심 내려놓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시집, 메롱메롱 은주, 문학과지성

 

 




부산 갈매기 - 김점용


일부러 잊은 건 아닌데
작정하고 잊은 것처럼

이번 추석엔 다음 기일엔 가야지 간다고 말하면서도
가서 다 털어놔야지 다짐하면서도

서울역에서도 울고 인천공항에서도 운다는데
십팔번 그 울음소리 듣지 못하네 들리지 않네

 

 

 

# 김점용 시인은 1965년 경남 통영 출생으로 서울시립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메롱메롱 은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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