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픔은 씹어도 남는 것이 없다 - 조숙

마루안 2016. 8. 1. 08:34



슬픔은 씹어도 남는 것이 없다 - 조숙



길게 늘어선 자동차 사이를 돌아다니며
뻥을 파는 남자
하얀 마스크에 모자 눌러 쓰고
가슴과 어깨 양손 가득히
뻥튀기 풍선처럼 매달았다


막힌 곳이면 어디나 뻥 뚫고 나타난다


슬픔은 씹어도 남는 것이 없고
값도 싸다
가벼운 존재이다


뻥이다


뜨거운 삶에 들어가
하늘과 땅이 맞닿도록 짓눌려야
가볍고 하얗게 된다


그 남자 잔뜩 부푼
둥근 몸으로
막힌 곳을 찾아 온 것 보면
절망에 남김없이 눌려보았다는 거다


뻥을 주고받는 순간
서로 뜨겁게
희망에, 짓눌려지고 있는 거다



*조숙 시집, 금니, 연두출판사








해피 추석 - 조숙



처음이지 아마
이 집 무릎걸음으로 닦아주는 것이
진공청소기랑 스팀 물걸레로 서서 훔쳐내던
집구석을 하얀 난닝구 들고 돌아보니


생각보다는 인간적으로다가
죽는 나방하고 바퀴벌레하고 초파리 껍질
모아둔 곳도 있고
강아지 털도 차곡차곡 정리해 놓았네
베란다 구석에는 제법 살림이 불어
양파껍질하고 오래 전 난초 잎이
회색 구름 같은 먼지 사이에 얽혀있어
하얀 난닝구를 몇 차례 빨면서
이 집 다 이해하려면
얼마나 더 기어 다녀야할지 막막한 거야
물건 사이에 얹혀사는 내가
오래된 연관성을 어떻게 다 알겠어
그냥 좀 정리하는 흉내나 내는 거지
잊지 않겠다던 얼굴도
가물가물해진 내가


혼자 지내는 추석이
처음이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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