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낯설지 마라 - 문동만

마루안 2016. 7. 24. 21:52



낯설지 마라 - 문동만



한 아이가 골목에서 생라면 까먹다 부스러기를 흘린다
가난한 날의 주전부리나 주눅들어 주저앉았던 담벼락
내 오래된 상징, 낯설었지


작업복을 빨아 널며 나는 옆집 빨랫줄을 쳐다보네
엉덩이 쪽에 찌든 기름자국을 나도 모르게 숨기며


망각은 청이끼처럼 자랐네


이 착한 초여름 바람에
누구라도 꺼내 말리는 오래된 삶의 부표들


내 꿈은 떠 있는 것이었지
가라앉지 않는 것이었지


오, 어떤 세월 그대여 낯설지 마라



*문동만 시집, 그네, 창비








직립의 뼈들 - 문동만



등 굽은 사내들은 축구공을 꿰맸다 골무를 끼고 기마자세로
한땀 한땀 육각형의 소가죽을 붙여 공을 꿰맸다
가끔 경마장을 찾아 일당을 날리고 두 갑의 담배를
재로 날리고 깊은 기침을 뱉어냈다
그들의 몸은 그들이 만든 공처럼 오그라들었다
쪽창으로 본드 냄새 풍기는 햇살이 들면 니코틴으로 쌓은
치석을 보이며 "야야 사는 게 다 이렇지 어떻간?"
나는 그때 도넛이 되어 올라가는 담배연기의 허무와
묵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공을 꿰매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다 안다고 겁없이 말했던 것이다
그들의 등을 공처럼 차버리면 공처럼 굴러갈까
그들은 평생을 싸우는 사람들의 바깥에 살았고
살기 위해 비교적 비겁했다 둥근 품새로 견뎠다
나는 그들의 바깥에 살았던가 그래서 잘 살았던가
내 등도 굽어간다 이 지상에 어떤 뼈들이 온전히 곧겠는가
하지만 흰 등뼈가 뼈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나도 당신들도 모든 뼈들을 보지 못했다
잠복한 직립의 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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