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마루안 2016. 5. 3. 23:55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시집,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시와시학


 

 





그대 내 손금이 될 때까지 - 정일근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꽃이 피었다 지는 슬픔보다도
나무들이 바람에 우는 아픔보다도
슬프고 아픈 일이지만
사랑하며 기다리는 것이
기다리며 눈물 훔치는 것이
내 사랑의 전부라 할지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라
흐르는 눈물 손가락에 찍어
빈 손바닥 빼곡하게
뜨거운 그대 이름 적어 보느니
내 손금에 그대 이름 새겨질 때까지
그대 내 손금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