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김재진

마루안 2016. 5. 4. 22:59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김재진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다던 소식 오지 않고 고지서만 쌓이는 날
배고픈 우체통이
온종일 입 벌리고 빨갛게 서 있는 날
길에 나가 벌받는 사람처럼 그대를 기다리네.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시집, 연어가 돌아올 때, 기탄잘리

 

 

 

 

 

 

아름다운 사람 - 김재진
 

 

어느 날 당신의 존재가
가까운 사람에게 치여 피로를 느낄 때
눈감고 한 번쯤 생각해보라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
무심코 열어두던 가슴 속의 셔터를
철커덕 소리내어 닫아버리며
어디에 갇혀 당신은 괴로워하고 있는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두렵고 낯설어질 때
한 번쯤 눈감고 생각해보라
누가 당신을 금 그어 놓았는가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가리고 분별해 놓은 이 누구인가
어느 날 당신의 존재가
세상과 등 돌려 막막해질 때
쓸쓸히 앉아서 생각해 보라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했는가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어느 날 당신의 존재가
더이상 어쩔 수 없이 초라해질 때
모든 것 다 내려 놓고 용서하라
용서가 가져다줄 마음의 평화를
아름답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라

 

 

*시집,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그림같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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