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이상운

마루안 2015. 11. 11. 23:57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마치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딱 그랬다. 나 혼자만 읽고 말 책이 있는데 공연히 추천했다가 감동이 없는 책이었다는 소릴 들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도 누군가 입이 마르도록 추천한 책이 내게는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좋은 책은 분명 있으나 모두에게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추천하고 싶다. 특히 중년 이후에 읽는다면 완전 공감을 할 것이다. 소설가 이상운은 그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 그의 소설이 다소 난해한 반면 이 책은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노년까지 비교적 건강하던 아버지가 여든 여덟이 된 해에 갑자기 열이 심하게 나면서 위급 상황이 된다. 병원을 가자는 자식들을 물리치며 아버지는 말한다. 이 나이에 무슨 병원이냐? 이대로 집에서 마감할란다. 그러나 열은 쉽게 내리지 않고 며칠을 고열에 사경을 헤매던 아버지가 탄식한다. 아, 죽기도 힘들구나!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응급차에 실려 병원을 간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남의 손에 모든 것을 의존하게 되는데 말 그대로 병치레가 시작되고 작가는 아버지 곁에서 병간호를 한다.

이 책은 88세에 병석에 들어 91세에 세상을 떠난 작가 아버지의 병간호 일기다. 대부분의 노인이 80세가 넘어 병원엘 간다면 완치되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병을 고치러 간다기 보다 좀더 편하게 죽음을 맞이하길 원한다는 것이 더 맞겠다.

작가의 아버지는 88세에도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었다. 아내 대신 밥도 안치고 설겆이도 하고 가끔 혼자 외출도 했다. 그런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심하게 열이 나면서 응급실로 실려 간 후부터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다.

노환이란 확실한 병명이 없다. 설사 안다고 한들 완치가 쉽지 않다. 비교적 건강했던 작가의 아버지도 눈이 거의 보이질 않을 정도로 시력이 나빴고 가까이서 큰 소리로 말해야 알아들을 만큼 청각도 나빴다. 연골이 닳아 조금만 걸어도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어쩔 것인가. 90이 다 된 노인의 노화 연상인 것을,, 그러나 정신은 비교적 멀쩡했던 아버지가 조금씩 기억도 망가져 간다. 말로만 듣던 섬망이란 현상도 이 책에서 경험했다. 아버지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똥오줌을 못가리게 되고 귀저귀를 차게 된다.

이것은 아버지가 병치레 초기 정신이 멀쩡했을 때는 한사코 거부했던 일이다. 거기다 소변이 나오지 않는 요도폐색으로 기계장치로 소변을 빼야만 한다. 이렇게 아버지의 병세가 깊어질수록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3년 반의 병치레 끝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돈이 없으면 이런 병치레도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가령 가난한 노인이 이런 질병에 걸렸다면 병원에서 온갖 검사와 생명 연장을 위해 힘써 주겠는가. 움직일 때마다 돈인데?

아마 입원도 시켜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대도 작가의 아버지가 입원한 종합병원 의사는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며 집에 가서 죽길 원해도 퇴원을 시켜주지 않는다. 90 가까이 산 노인이 자기는 살만큼 살았으니 집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데 말이다.

입원부터가 아예 불가능했겠지만 가난한 사람이 그랬다면 의사는 당장 들어줬을 부탁이다. 죽음은 누구든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다가온다. 잘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 가면서 줄곳 떠올린 단어다. 허나 세상은 살기도 어렵지만 죽기도 어려운 것인가? 이래저래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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