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을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
길 - 황지우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 보면은
조선팔도,
모든 명당은 초소다
한려수도,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롱나무께 조아려 - 김병심 (0) | 2016.02.09 |
---|---|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 정일근 (0) | 2016.02.05 |
오래된 연인 - 박철 (0) | 2016.02.01 |
별들의 시차 - 이은규 (0) | 2016.01.29 |
사랑하는 사람에게 - 김재진 (0) | 2016.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