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별들의 시차 - 이은규

마루안 2016. 1. 29. 01:25



별들의 시차 - 이은규



그가 음독(飮毒)하며 중얼거렸다는 말
인간은 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상상한다


천문학자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정치를 했다는 이력으로 한 죽음을 이해할 필요는 없고


눈이 아프도록 흩뿌려진 별 아래
당신의 몸속 세포와
궤도를 도는 행성의 수가 일치할 거라는 상상이 길다


저 별이 보입니까
저기 붉은 별 말입니까


조용한 물음과 되물음의
시차 아래
점점 수축되어 핵으로만 반짝이던
한 점 별이 하얗게 사라지는 중이다


어둠을 찢느라 지쳐버린 별빛은
우리의 눈꺼풀 위로 불시착한 소식들
뒤늦게 도착한 전언처럼
우리는 별의 지금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마주할 수 있을 뿐


어떤 죽음은 이력을 지우면서 완성되고
사라지는 별들이 꼬리를 그리는 건
그 속에 담긴 질문이 너무 무거워서일지도 모른다


불가능하게 무거운 저 별, 별들



*시집, 다정한 호칭, 문학동네








청진(聽診)의 기억  이은규



누가, 두 귀를 잘라 걸어놓았을까


유리창 너머 금속성의 귀
노을을 흘리며 허공을 듣고 있는 청진기였다
의료에 쓰이기보다 헤드셋에 가까운


당신을 듣기 위해 항상 열어두었던 내 귀
채집된 음을 기억의 서랍 속에 숨겨놓은 날이 길다
귀는 깊어 슬픈 기관일 거라는 문장


말더듬이였던 당신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말들이 몸을 떠도는 거라는 소견이 있었다
함께 받은 처방은
구름의 운율에 따라 문장 읽기를 하라는 것
혹은 가슴에 귀를 대고 기다려주기


청진, 듣는 것으로 보다
모든 병은 마음이 몸에게 보내는 안부
말더듬이를 앓는 건 그가 아니라 마음이었으므로,
말에 지칠 때마다
당신은 구름이 잘 들리는 내 방 창문을 두드렸다
문장 읽기를 하다 당신의 가슴에 귀를 묻으면
금세 꿈꾸는 숨소리, 차라리 음악이었고


어느 의사가 병명을 알 수 없는 환자가 안타까워 체내의 음에 귀 기울인 데서 시작되었다는 청진의 기원


이제 당신은 멀리 있고
청진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므로
내 두 귀는 고요한 서랍이다


그때의 구름만 내재율로 흐르는 창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0) 2016.02.04
오래된 연인 - 박철  (0) 2016.02.01
사랑하는 사람에게 - 김재진  (0) 2016.01.29
운명 - 천양희  (0) 2016.01.23
1년 - 오은  (0) 201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