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산다는 것은 누구를 사랑하는 일 - 이기철

마루안 2015. 12. 15. 01:01



산다는 것은 누구를 사랑하는 일 - 이기철



누군가를 기다리다 잠드는 사람 있을 듯하다
그의 눈시울이 조금 젖었을 것이다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반가워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가 유리창에 편지를 쓰고
낮에 익힌 말들을 잊지 않으려고
잠들기 전에 새들이 잠꼬대를 한다
낙엽이 창을 두드린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혹은 사랑했던 기억의 방으로 들어가는 일
가을엔 걸어서 낯선 이의 집에 도착하고 싶다
창을 두드리는 낙엽 소릴 들으며
그가 벗어 놓은 신발에 소복소복
나뭇잎 담기는 것 보고 싶다

 


*시집,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서정시학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힘 - 이기철



누구도 함부로 외롭다고 말해선 안 된다
외로움을 사랑해 본 사람만이
외롭다고 말해야 한다
외로움을 저만치 보내놓고
혼자 앉아 외로움의 얼굴을 그려본 사람만이
외롭다고 말해야 한다
외로움만큼 사치스러운 것은 없다
그의 손으로 무지개를 잡듯이
외로움을 손으로 잡을 수 있어야
외롭다고 말할 수 있다
외로움의 가슴 속에 들어가
바알간 불씨가 되어보지 않는 사람은
외롭다고 말해선 안 된다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때, 한 방울 이슬처럼
외롭다고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