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젖이라는 이름의 좆 - 김민정

마루안 2015. 12. 15. 00:36



젖이라는 이름의 좆 - 김민정



네게 좆이 있다면
내겐 젖이 있다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유치하다면
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일지니


어쨌거나 우리 쥐면 한 손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빨면 한 입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썰면 한 접시라는 공통점


(아, 난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이 지극한 공평, 이 아찔한 안도)


섹스를 나눈 뒤
등을 맞대고 잠든 우리
저마다의 심장을 향해 도넛처럼,
완전 도-우-넛처럼 잔뜩 오그라들 때
거기 침대 위에 큼지막하게 던져진


두 짝의 가슴이,
두 쪽의 불알이,


어머 착해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지성








미혼과 마흔 - 김민정



학익동이요 했는데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끽동 길 한복판이었다 쉽게 불러요 쉽게 부르지 그렇게 불려온 40여 년 동안 어둠 깜깜할수록 빨강으로 더 환해지던 옐로 하우스의 안마당, 입대 전날 아빠의 동정도  머뭇거리다 여기 와 묻혔다는데 지금이라도 캐갈 수 있을까요? 돌아봤다 돌이 된 엄마가 돌아 보지마 신신당부 했거늘 떨어뜨린 문학개론 주우려다 눈이 마주친 끽동 언니는 하이힐 끝으로 책장 위에 올라선 채 이렇게 말했다 뭘 째려 이 쌍년아, 너도 인하대 나가요지? 길 하나를 맞각으로 캠퍼스 저 푸른 잔디를 담요 삼아 끽동 언니들은 짝짝 껌을 씹어가며 딱딱 화투장을 쳐댔고 그러다 간질거려 죽을 지경이면 뒷물 세숫대야를 들고 나와 지나가던 여대생들을 향해 뿌려대곤 하였다 재들이 젤로 재수 없어 퉤, 침 뱉었지만 물 마르기 전에 물 뿌리기 바쁜 끽동 언니들의 목마름이란 그 가래도 아까워라 자갈처럼 나날이 입 다물어야 했는데 세라복을 입은 채 놀다가, 웬 사람의 팔을 잡아끌 때 그 땀방울도 아껴라 잠시도 장독대처럼 일어날 줄 몰랐는데 어느 날 끽동이요 했는데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학익동 새 아파트 단지였다 신호등 좀 건너다녔을 뿐인데 말이다





# 언어를 주무르는 능력이 특출한 시인이다. 프라이팬(Pen) 하나만 있으면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재료 몇 가지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주방장이 이럴까? 외설과 순수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시를 읽으며 탄복한다. <미혼과 마흔>은 인천 출신 아니면 쓰기 힘든 시다. 내게도 동인천 뒷골목을 배회하던 스무 살 무렵 그날의 애인에 따라 애관극장을 갈까 인형극장을 갈까 짱구 굴리던 시절이 있었다. 시인과 언제 한번 애관극장으로 영화나 보러 가자고 해야겠다. 주목할 만한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