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살고 싶다 - 이창숙

마루안 2015. 11. 27. 09:36



살고 싶다 - 이창숙



겨우 몇 잎만을 달고 있는
이름 없는 덩굴나무가
창의 공중을 붙잡고
자꾸만 손을 뻗는다
너의 손목에 멈추는 내 눈길이
오늘은 나도 두려워져
지난번 너의 손목에서 흐르는
하얀 핏물을 보고
끔찍하게 내 눈을 아리게 했던
한 뼘만 오르면 커튼자락을 붙잡을 수 있는데....
지금도 안간힘을 쓰는 너의 기도
차마 싹뚝 잘라낼 수 없구나


그렇다
생(生)은, 살아 있는 것들의 끊임없는 은유의 몸짓
너와 내가 한곳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수많은 밤 지나 제 집에 이르러
비로소 죽음의 잔해들 속에서
나를 완성하는 게 아닐까


가위 쥔 내 오른쪽 생각의 손을 자르면
붉은 피?
"더는 걱정하지마!"



*시집, 바람든 무 내 마음에게, 눈빛








독(毒) - 이창숙



햇빛이 미끄러진다
스르르 내 무릎팍에 엎딘다
내 목덜미를 휘감고
내 가슴을 쓸던
검불 태우던 불 같은 것
내 정신 한가운데서
(인간은 인간의 손에 잡힐 수 있듯)
204 페이지 사람을 읽다
활자들을 덮어 버린다
이게 끝장이라면....
어제도 오늘, 견디는 법을
햇빛보다도 강한
그에게서 수없이 찔리고서도
목까지 차오르는 생(生)


바람 분다
살아봐야겠다*


*발레리 <해변의 묘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