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 유하

마루안 2015. 11. 18. 23:53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 유하

 
 

붉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문득
그대 이름을 불러볼 때
단숨에 몰려오는, 생애 첫 가을
바람은 한 짐 푸른 하늘을
내 눈 속에 부려놓는다

 

마음 닿는 곳이 반딧불일지라도
그대 단 한 번 눈길 속에
한 세상이 피고 지는구나


나 이 순간, 살아 있다
나 지금 세상과 한없는 한몸으로 서 있다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먼 곳의 새가 나를 통과한다
바람이 내 운명의 전부를 통과해낸다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

 

 





 
중독된 사랑 - 유하



그 사람의 어떤 말과 행동이 내게 상처를 주었고
나는 한동안 깊은 마음의 병을 앓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사람에게
내가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는지를
힘겹게 고백하려 하였으나, 막상
그토록 쓰린 아픔 이외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굳은 약속을 파기한 그 순간, 내 가슴에 박혔던
그 사람의 구체적인 표정과 몸짓은
얼음 화살처럼 지워져버렸고
오직 다친 마음의 흔적만이 모질게 나를 탓하였다


그럴수록, 난 고통을 견디기 위해
붉은 상처의 바깥에서 여전히 건재한
그 사람의 매혹에 얼굴을 파묻고,
사랑의 환희만을 안간힘으로 흡입했던 것이다


 



# 유하의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을 보면 영화 제목을 차용한 작품이 여럿 나온다. 지금이야 굳이 극장을 찾지 않아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1990년대만 해도 극장을 찾아가야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를 개봉하는 극장도 딱 하나의 스크린에서만 개봉하는 단관 개봉이 대부분이어서 극장에 걸린 영화가 참 오래 걸려있었다. 1993년에 개봉한 서편제 같은 경우 단성사에서 6개월 넘게 상영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지금처럼 디비디는 커녕 비디오도 크게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개봉관에서 영화를 놓치면 다시 볼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멀티프렉스라는 복합 상영관이 대세인 요즘이야 한 극장에 스크린이 몇 개씩 있고 좀 인기가 있는 영화는 한꺼번에 3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해 전국적으로 개봉을 하는 요즘이야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단관 개봉으로 관객수 10만 명을 채우려면 과연 며칠이나 걸렸을까. 다행스럽게 개봉관에서 놓친 영화를 볼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간판을 내린 영화를 얼마 후 재개봉관에서 다시 틀어주었기 때문이다.


개봉관은 보통 서울 명동이나 종로에 있는 극장이었고 재개봉관은 변두리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두 편을 번갈아 틀어주는 동시상영관이 대부분이었고 입장료도 개봉관보다는 약간 싸서 돈 없는 영화광들이 영화의 허기를 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화적인 시를 쓰는 유하 시인도 참 많은 시간을 극장에서 보낸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밥 만큼 좋아했던 나도 그런 부류의 한 사람이었고,,

 

뽕, 산딸기 등 에로틱한 시대물과 한창 유행했던 애마부인과 젖소부인 시리즈, 이소룡을 흉내낸 황당무계한 홍콩 무협물, 그리고 사관과 신사, 아프리카 탈출, 늑대와 춤을 등 헐리우드의 대작 영화 등이 당시 극장에 걸렸었다. 아무리 유치한 영화도 두 편을 연달아서 볼 수 있었기에 딱히 갈 곳 없는 청춘들이 시간 떼우기에는 마춤이었다. 당시에 자주 갔던 개봉관은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국제극장, 종로2가에 허리우드, 종로3가에는 피카디리와 단성사, 서울극장이 있었고, 을지로의 국도극장, 명동에 중앙극장, 코리아극장, 충무로에 명보극장과 스카라, 청계천의 아세아극장 등이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진 극장들이다. 감성있는 시인이자 재능있는 영화감독이기도 한 유하 시인의 시를 읽으며 모처럼 흘러간 극장의 옛추억을 떠올려봤다. 시라는 게 불멸의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낡은 신파극처럼 한 시대의 풍경을 담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