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살이라는 잔고 - 김명인

마루안 2015. 10. 4. 21:37



살이라는 잔고 - 김명인



갓난아기를 안을 때의 눅눅한 살가움
맨살에 닿던 뭉클한 화색을
나는 오래 잊어버렸다
한때 울창했던 숲에 대고
메마른 목소리로 말하리라, 버짐나무여
언제부터 황사 속에 서 있었느냐?


물살에 적셔야 건널 수 있었던
여울목들, 자갈돌 끓어오르는
저녁의 개울가에 젖은 옷가지를 벗어 넌다
거죽과 뼈로 지은 굴피 집
기울고 기운 살의 몰골이 물에 비친다


되는 대로 미끄러져가며 터뜨렸던
내 삶의 어떤 폭죽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잠깐 일어섰다 부서지던 파문을
저도 안다는 것일까
모르는 사이에 사십 년이 꼬박 흘러갔다!


결심을 하고 그 결심으로부터
덜어내는 살이라는 잔고
잔고라면 바닥내는 일 없어야지
지치고 외로워야 이 축생은 한때의 온기를
기억하나 보다, 세찬 물굽이에 휩쓸렸어도
물살의 살가움 오랫동안 생생하고



*시집, 여행자 나무, 문학과지성








이 잠 저 잠 - 김명인



백중을 구워내는 도가니 공장과 낮잠은
빼닮았다, 악몽에 빠진 공장장이
들고 건너온 구름 베개의 한낮
그늘을 버텨주던 숲의 마음이
옅은 잠귀에 대고 속삭인다, 떠도는
물방울들아 잘 견디느냐?
죽은 친구와 한참을 더 엎어졌다가
노을 비낀 저물녘으로 흘러나오니
땀 절은 몸이 물 먹은 솜처럼 혼곤하다
구름의 일생을 돌보느라
시드는 꽃자리가 바람 빠진 풍선이었나
서산 모롱이 어느새 어둠이 장착되고 있다
냉동사가 되어 일생을 꽁꽁 얼려버리는 꿈
모든 후일담과 환승기는
빼닮았다, 그 위에 얹히는 순간
지워질 차례를 기다리니
꽃들이 누선을 켜고 석양처럼 글썽거린다
잠이 오래면 예감은 엷어지는 것
그 꽃 만나러 가는 길 짦아졌음을 그대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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