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여름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가을이다. 바람이 선선해지면 전시장 찾아가는 일로 더 분주해진다. 사진 공간으로 참 좋은 류가헌에서 오래 기억될 만한 전시회를 봤다. 작가 이강훈의 사진전이다.
<서로 기대다>, 전시전 제목이 눈길을 끈다. 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타인 가족 시리즈 2 :어느 8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부제목은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를 잘 담고 있다. 조금은 특이한 가족 이야기를 잘 담아낸 사진전이다.
부부는 성수동 쪽방촌의 반지하에서 산다. 40년 전 남자가 40대 여자는 30대였을 때부터 외로운 사람끼리 함께 살자면서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없이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둘이 살기에도 벅찼는지 자식도 없이 살았다. 평생 노동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늙고 건강까지 잃어 일을 하지 못해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로 기대다는 이런 노부부의 일상을 보여준다. 사는 게 고달프고 가난한 그들에게 서로 의지하는 힘은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서로 기대는 작가 이강훈이 몇 년 전에 선보였던 <눈에 밟히다>에 이은 타인 가족 시리즈 두 번째 전시다. 첫번 전시는 보지 못했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가 이번 전시를 보게된 계기가 되었다.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이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밑에는 몇 년 전에 선보였던 이강훈의 첫 번째 작업이다. 그 때 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는데 자료가 있어 올린다. 당시 나는 해외에 있었다. 보도를 통해 전시 소식을 듣고 단박에 사진가 이강훈에 관심이 생겼다. 이번 전시도 그 때 저장된 기억 때문에 오게 되었다. 전시장에서 잠시 대화를 했는데 키도 훤칠하고 좀 싱겁게 생겼으나 작업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소란스럽지 않게 묵묵히 작업을 하고 인간적으로 대상에 다가서는 작가의 인간 사랑이 묻어났다. 전시 또한 사진에 대한 열정이 있지 않고는 지나칠 수 있는 조용한 전시를 많이 한다. 숨어 있는 전시를 찾아낸 나의 혜안을 이런 때는 칭찬해야겠다. 기억할 만한 사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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