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종점을 기다린다 - 황학주

마루안 2015. 7. 7. 04:50



종점을 기다린다 - 황학주



종점을 기다린다 흰 우산살을 펴며


비가 쉬지 않고 새드는 가게 처마 밑
물받이가 비벼서 내려 보내는 빗방울
뭐라고 하나
빗소리
불 꺼진 창만 골라
사납게 뛰어들 때


허리띠를 풀면 내려가는 바지처럼
눈이 풀어지면 스르르 종점에 닿으련만 버스가 오지 않는다
정류장에서 매일 저녁 출생 지점으로 돌아가는
일용의 여행자, 상속받은 귀가를 기다린다
봄비에 젖어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러 오라는 듯
눈이 흐린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거리는 파인 도마처럼 펼쳐져 있고
칼을 든 영혼처럼 손목을 놀리는 비
포플러나무가 팔을 붙인 채 염주비를 돌린다
빗소리를 감았다 풀었다 하는
배뇨를 참고 있는 사람의 골목이 먹갈치처럼 흘러가며


종점을 기다린다
낙수 고랑을 타고 그 한 집
불 꺼진 방으로 가는



*시집, 저녁의 연인들, 랜덤하우스








굽은 소나무 그림자 - 황학주



등 뒤에서 나의 가장 먼 곳의 문고리를 잡는 것이었다
등 뒤에는 오래 오래된 마룻장이 있었다
극락전까지 걸어가는 시월이면
등 뒤로 찔러오는 것처럼 깊어
슬픔과 함께 피어오르는 망향은 확인해줄 수도 없다


연못 수면에 살짝 쓰러진 꽃을
받쳐 들고
오래 걸어서 갈고리가 되도록 구부러진 가지로
극락전까지
핏줄을 대가는

그림자





*시인의 말


수줍은 중년이다.

고개를 숙여야 하는 낮은 집을 출입하고 있다.

이런 마음의 집에 '저녁' 외에 달리 무슨 이름을 달겠는다.

짝, 도 좋다.



# 그 수줍은 중년이 이제 환갑을 넘겼다. 여전히 수줍은 중년이다. 십여 년 지난 묵은 시가 잘 숙성되어 긴 여운을 남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애의 나날 - 김경미  (0) 2015.07.27
우리 처음처럼 - 김수열  (0) 2015.07.24
장마 - 안상학  (0) 2015.07.05
너무 아픈 사랑 - 류근  (0) 2015.07.05
장마 첫날 - 김인자  (0) 201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