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장마 - 안상학

마루안 2015. 7. 5. 18:57



장마 - 안상학

 

세상 살기 힘든 날
비조차 사람 마음 긁는 날
강가에 나가
강물 위에 내리는 빗방울 보면
저렇게 살아 갈 수 없을까
저렇게 살다 갈 수 없을까
이 땅에 젖어들지 않고
젖어들어 음습한 삶내에 찌들지 않고
흔적도 없이 강물에 젖어
흘러 가버렸으면 좋지 않을까
저 강물 위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이 땅에 한 번 스미지도
뿌리 내리지도 않고
무심히 강물과 몸 섞으며
그저 흘러흘러 갔으면 좋지 않을까
비조차 마음 부러운 날
세상 살기 참 힘들다 생각한 날
강가에 나가 나는



*시집, 오래된 엽서, 천년의시작

 






 

백련사에 두고 온 동전 한 닢 - 안상학



누군가 나에게서 떠나고 있던 날
나도 내 마음 속 누군가를 버리러
멀리도 떠나갔다 백련사 동백은 
꽃도 새도 없이 잎만 무성하였다 우두커니
석등은 불빛을 버리고 대신 얻은

동전을 세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손을 모으게 했을
잘 안 되는 일들의 기록을 살피고 있었다 

나도 내 잘 안 되는 일들의 기록을
동전 한 닢으로 던져 주었다, 석등은
내 안의 석등도 오래 어두울 것이라 일러주었다


가질 수 없는 누군가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 꽃등 없는 동백나무 한 그루
끝끝내 따라와서 내 가슴에 박혀 아팠다
백련사 석등에게 미안했다 누군가에게
너무 오래 걸린 이별을 바치며 미안하고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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