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들이 봉숭아보다 더 붉어서 아프다 - 여림
바다를 본 기억이 없다 분명 기억 속의 그 도시엔 바다가 있었는데 난
바다를 본 기억이 없다
횡단보도였지
차들이 소음을 지르며 질주하고
행인들이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햇살은 부시도록 선명했는데
나
가게 앞 의자에 앉아 혼자 울 뻔 했었다
살아 있다니
...그건
참으로 끔찍하기까지 한 현실이었다
울지 않으려 차창으로만 시선을 두다가 일시에 날아오르는 새떼를 보았지
황망하게도
그 풍경이 나를 울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늘 그 자리에 웃거나 혹은 뒤척이면서 지내고 있었다
우습게도
그런 모습이 또 서글퍼 보이기도 하더군
할 말이 너무 많아서일까?
나
웃다 울다 바보처럼 돌아서 왔다
그리운 사람,
때로 너무 생각이 간절해져서 전화조차 버거웠다면 쓸쓸히 웃을까?
보고 싶어서 컴퓨터 자판 위에 놓인 손가락들을 본다
그런데
손가락들이 봉숭아보다 더 붉어서 아프다
그리운 사람
조금씩만 서로 미워하며 살자
눈엔 술을 담고 술엔 마음을 담기로
*시집, 새들이 안개 속으로 걸어간다, 작가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 여림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는 점점 장대비로 변해가고 그 빗속을 뚫고 달리는
버스 차창에 앉아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을 너를 떠올리면서
조금씩 마음이 짓무르는 듯했다.
사람에게는,
때로 어떠한 말로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넋을 두고 앉아 하염없이 창 밖을 내다본다거나
졸린 듯 눈을 감고 누웠어도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의 어느 한 부분처럼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너를
보내는 길목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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