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봄에 앓는 병 - 이수익

마루안 2015. 3. 25. 21:50



봄에 앓는 병 - 이수익



모진 마음으로 참고 너를 기다릴 때는
괜찮았느니라.


눈물이 뜨겁듯이 그렇게
내 마음도 뜨거워서
엄동설한 찬바람에도
나는 추위를 모르고 지냈느니라.
오로지 우리들의 해후만을 기다리면서.....


늦게서야 병이 오는구나,
그토록 기다리던 너는 눈부신 꽃으로 현신하여
지금
나의 사방에 가득했는데
아아, 이 즐거운 시절
나는 누워서
지난 겨울의 아픔을 병으로 앓고 있노라.
 


*시집, 슬픔의 핵, 고려원








우울한 샹송 -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 1983년에 나온 시집을 들춘다. 30년이 지난 시집도 고려원이라는 출판사도 낯설다. 그때는 고려원이 가장 유명한 출판사였다. 이수익 시인은 우울한 샹송을 1969년에 발표했다는데 지금 보면 시인의 시력이 놀랍다. 이 시는 워낙 유명한 시여서 인터넷에 난무한다. 여기 저기 옮기는 과정에서 오탈자도 있고 심지어 탈락한 연도 있다. 참으로 긴 생명력을 가진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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