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공중 묘지 - 성윤석

마루안 2015. 3. 8. 22:33



공중 묘지 3 - 성윤석



서울에서 행려로 죽으면 대부분 정 씨에게로 간다.
한 달 만에 발견된 주검이나, 노숙의 끔찍한 상처,

미혼모가 버리고 간 쓰레기통 속의 아이들 우리가 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 부는 날 자살했으나 뒤늦게 발견된 미인의 얼굴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뺑소니차에 치인 사체의 얼굴을


거두어 온 저 늙은 손, 거리에서의 죽음을 그는
안다. 한 사람 한 사람 제 몸에 안기고 묻혔음을


서울에서 떠돌던 그들이 정 씨를 몰랐듯


지상에서의 끝은 시립 병원 어두운 영안실 같은 곳


그때 나는 세상을 떠난 줄도 모르고 밥을 먹고
버스를 기다리고 여자의 입술을 훔친 건
아니었을까.


그때 누가 나의 함몰된 얼굴을 만졌을까.
누가 나의 깨져 버린 어금니에 철심을 박아
입술 모양을 되살려 줬던 것일까.



*시집, 공중묘지, 민음사








공중 묘지 2 - 성윤석



묘지 입구 관리동 화장실 옆 둔덕 위 소나무에 오늘은 긴 줄이 묶여 있다.
명절 때면 누군가 야밤에 혼자 올라가 내려오지 않아 이튿날 아침 앰뷸런스가
가끔 올라가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러는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는 간신히
살아나기도 하였겠지만,


소나무 가지가 좀 빈약해 보이기도 하고 줄이 튼튼하지 않아 보이기도
하는데, 아버님께 뼈를 빌고 어머님께 살을 빈 뒤 콩나물과도 같이 밑 없는
독에서 자라났을 누군가가 매달아 놓고 그냥 가 버린 줄 하나가
허공에 바람결에 새기고 있는 문장들


너무 높게 매달았어. 혹시라도 내려오긴 싫었던 게지. 그래서 실패했는지
몰라. 작업반의 눈길이 아니더라도
한동안은 아무도 풀지 못할 빈 줄 하나가
바람을 탄다. 아무도 읽어 내지 못할 비문을 어깨에
메고 밑 없는 국도 쪽으로
그는 언제 내려갔을까.






# 성윤석 시인은 1966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경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한국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공중 묘지>, <멍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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