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횟수 - 김경미
내 집 낡은 뻐꾸기시계는 제 울음의 횟수가 따로 있다
밤 한 시에 갓난애처럼 열 번 스무 번 깨어 울거나
아홉시에 달랑 한번만 탁, 침 뱉고 들어가거나
다음날 정오엔 절마당 동백꽃 속에 빠진 채 아예 잠잠하거나
나 또한 나만의 눈물의 횟수가 따로 있으니
안심할 때만 골라서 뒷머리에 돌을 맞거나
시작하려 하자마자 떠나거나
애절하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거나
한밤중에 깨어 일어나 찬밥을 먹거나
한낮의 버스에서 쇼핑백 터지듯 울음이 터지거나,
스무살에는 서른을 대고
서른엔 스무살인 척했거니
첫눈에 눈물의 횟수를 알아맞힌 그 새와 나,
번번이 땅에 떨어지는 얼굴이며, 다음날 약속을
전날에 나가 자처하는 이별 통첩이며, 내일의 줄거리를
다 발설하고 마는 어제 따위까지
다른 시간들은 다 아무래도 좋았다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 창비
겹 - 김경미
1
저녁 무렵 때론 전생의 사랑이 묽게 떠오르고
지금의 내게 수련꽃 주소를 옮겨 놓은 누군가가 자꾸
울먹이고
내가 들어갈 때 나가는 당신 뒷모습이 보이고
여름 내내 소식 없던 당신, 창 없는 내 방에서 날마다
기다렸다 하고
2
위 페이지만 오려 내려 했는데 아래 페이지까지 함께 베이고
나뭇잎과 뱀그물, 뱀그물과 거미줄, 거미줄과 눈동자, 혹은 구름과 모래들, 서로 무늬를 빚지거나 기대듯
지독한 배신밖에는 때로 사랑 지킬 방법이 없고
3
그러므로 당신을 버린 나와
나를 버린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청순하고 가련하고
늘 죽어 있는 세상을 흔드는 인기척에 놀라 저만치
달아나는 백일홍의 저녁과
아주 많이 다시 태어나도 죽은 척 내게로 와 겹치는
당신의 무릎이 또한 그러하고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는 일 - 허연 (0) | 2015.02.19 |
---|---|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 김남조 (0) | 2015.02.17 |
사람아, 이쯤서 - 김윤배 (0) | 2015.02.16 |
그리운 호미곶 - 서상만 (0) | 2015.02.15 |
벼랑의 나무 - 안상학 (0) | 2015.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