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리운 호미곶 - 서상만

마루안 2015. 2. 15. 00:45



그리운 호미곶 - 서상만



오늘밤도 내 마음은
맨발로 왕자갈을 밟는다


밤 파도 높이 치던 날
등대불빛이 번쩍번쩍 창호지를
이리 긋고 저리 그어
잠들지 못할 때,
만곡으로 낮게 휜 호미곶 능선 따라
은빛 보리이삭 수만 자락이
추수 꿈에 출렁일 때,
앞 구만 먹빛물결, 바람의 회초리로 매 맞으며
갈기갈기 아픈 울음 울던 바다


달 뜨면
까끌까끌 베 홑이불 깔고
달빛 젖은 내 살 파도소리에 닦아
어머니 날 재워주시고


간간히 들 부엉이처럼 잠꼬대하다
바람소리에 소스라치면
내 연한 팔다리에 싱싱한 물이 올라
하룻밤에 자가웃이나 키가 컸던가


안개바다, 머언 霧笛(무적)소리
죄초된 폐선의 종아리를 때리며
곧잘 목이 메는 변방의 푸른 바람도
어머니 살 냄새로 불고 있는
그리운 호미곶



*시집, 그림자를 태우다, 천년의시작








노숙 - 서상만



구포나루에
먼 길 흘러온 주름진 물길 하나 허둥댄다
여기쯤 확 잠길까, 더 흘러가버릴까
밤새 치댄 물색은 이미 황토 빛이다


난바다의 꿈을 안고
만곡의 강물 밀고 달려왔건만
하구의 확 늙어버린 퇴로는
느리고 느린 무덤길이다
갈갈이 찢겨진 끈 풀린 치마폭이다


좀처럼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던 바닷가,
아프지 않게 천천히
흘러온 물의 발그림자부터 섞는다, 마침내
제 몸을 열어 한 몸이 되어주는 바다
그러나 언젠가 또 버리고 갈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