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벼랑의 나무 - 안상학

마루안 2015. 2. 5. 10:26



벼랑의 나무 - 안상학
 

 

 

숱한 봄
꽃잎 떨궈
깊이도 쟀다


하 많은 가을
마른 잎 날려
가는 곳도 알았다


머리도 풀어헤쳤고
그 어느 손도 다 뿌리쳤으니
사뿐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이제 신발만 벗으면 홀가분해질 것이다

 


*시집,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실천문학사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는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때 그곳에서 뿌리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