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살인의 기술 - 이현승

마루안 2015. 1. 28. 21:35



살인의 기술 - 이현승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나는 쓴다.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고 바람 속을 지나가는 사람처럼
텅 빈 중심을 향하여 나는 걸어왔다.
어쩌면 모든 것은 기술의 문제.


죽은 사람의 초대를 받는 잔칫집에서는
소화제나 화투장 같은 것을 준비해두는 법이지만
식욕과 투기심이 생의 은유가 되기 위해서는
사육의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악해지기 위해서도 소명 받아야 한다는 것을,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배운다.
원한도 분노도 없는 살인에는 무엇이 빠져 있는가.
어째서 현장검증에는 살인의 기술만 있고 즐거움은 없는가.
두 번째를 위해 힘을 아껴두는 것을 주도면밀하다고 하는가.


사고와 무친에 대해 생각하는 자가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망연함으로 밥을 넘길 때
사육의 기술은 최대의 힘을 갖는다.
미래를 살아내느라고 내 청춘은 소진되었다고 나는 쓴다.



*시집, 친애하는 사물들, 문학동네








누아르 - 이현승



끈끈함이란 파리들의 우정이네
같이 밑바닥을 기어본 자들의 것이지
날개가 피부든 손톱이든 간에
그 날갯짓이 경박하든 말든
그것은 떠오르는 데 도움이 되네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면 곧장 천상인 듯
날갯소리 힘차지만
한낱 파리 날개일지라도
누가 먼저 비상할 때 위험해지는 것이 바닥의 생리라네


바닥을 벗어나면 다른 바닥이 기다릴 뿐
껌딱지처럼 질기게 들러붙은 것이 밑바닥이지
호구에는 천상 고단함이 따르고
피곤은 업종을 가리지 않네


떼인 돈을 받으러 다니거나
밤길 조심해라 딸 예쁘더라
언뜻 들으면 어머니 말씀 같지만
한번 들으면 문신처럼 새겨지는 말들도 곧잘 한다네


상스러움과 불량기가 필수인 이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리듬인데 어딘지 뽕짝스러운 리듬은
건달들의 걸음걸이에 녹아 있고
흉투성이의 순정 위에 녹아 있네
건달은 양아치와 다르다는 굳건한 믿음 위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