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리운 악마 - 이수익

마루안 2014. 11. 16. 21:33



그리운 악마 - 이수익



숨겨 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 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암호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 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 같은 여자.



*시집, 푸른 추억의 빵, 고려원








근황 - 이수익



쉰 살이 되니까
나도 반쯤 귀신이 되어가는 모양이군.
자기 죽은 날 옛집을 찾아가는
귀신 눈에는 제삿상도 보인다던데
쉰 살이 되니까 내게도
지난 추억이란 추억들이
불을 켠 듯 환히 보이기 시작하는군.
그뿐인가, 쉰 살이 되니까
내가 앞으로 내처 가야 할
길도, 여럼풋이 보이기 시작하는군.
옛날에는 점술가한테서나 알아보던 그 길이......
이런 일은 정말
몇 해 전만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쉰 살이 되니까
나도 반쯤 귀신이 되어가는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