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대책 없는 봄 - 임영조

마루안 2014. 6. 8. 09:09



대책 없는 봄 - 임영조

 


무엇이나 오래 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엔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털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높이 뻗어서 저런!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 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하지만
맨 처음 발설한 건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락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자꾸만 수상쩍어 가보니 이런!
겁 없이 멋대로 발랑 까진 십대들
냉이 꽃다지 제비꽃 환하더군요
몰래 숨어 꼬나문 담뱃불처럼
참 발칙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 없는 봄날입니다



*시집, 시인의 모자, 창작과비평

 






어떤 선문답 - 임영조

 

짐 벗는 어깨가 옹이처럼 얼얼한
남자 나이 쉰이면
고물일까?
퇴물일까?

 

꽃잎 진 자리가 상혼처럼 허전한
여자 나이 쉰이면
막장일까?
파장일까?

 

팔월 염천 쓰르라미 한 마리
늙은 느티나무 가지에 붙어
쓰을 쓰을 쓰읍쓸 쓰읍쓸
온 하루 입맛 쓴 선문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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