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우리가 만나자는 약속은 - 강인한

마루안 2014. 6. 15. 08:30



우리가 만나자는 약속은 - 강인한

 

사람 사는 일이란
오늘이 어제 같거니 바람 부는 세상
저 아래 남녘 바다에 떠서
소금 바람 속에 웃는 듯 조는 듯
소곤거리는 섬들
시선이 가다 가다 걸음을 쉴 때쯤
백련사를 휘돌아 내려오는 동백나무들
산중턱에 모여 서서 겨울 눈을 생각하며
젖꼭지만한 꽃망울들을 내미는데
내일이나 모레 만나자는 약속
혹시 그 자리에 내가 없을지 네가 없을지
몰라 우리가 만나게 될는지
지푸라기 같은 시간들이 발길을 막을는지도
아니면 다음 달, 아니면 내년, 아니면 아니면
다음 세상에라도 우리는 만날 수 있겠지
일찍 핀 동백은 그렇게 흰눈 속에
툭툭 떨어지겠지
떨어지겠지 단칼에 베어진 모가지처럼
선혈처럼 떨어지겠지
천일각에서 담배 한 모금 생각 한 모금
사람 사는 일이란
어제도 먼 옛날인 양 가물거리는
가물거리는 수평선, 그 위에 얹히는
저녁놀만 같아서.

 


*강인한 시집, 푸른 심연, 고요아침
 
 




 


잠들기 전에 눈물이 - 강인한

 

 
그게 나이 탓일까
잠들기 전 베개를 베고 잠시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나와


오늘밤이 어쩌면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인 것처럼
말없는 한 순간의 기도
혼자 시드는 밤
둑길의 망초꽃


잠들기 전 베개를 베고
귓가로 흘리는 눈물
잊어서는 안 될 슬픔이
길섶 어딘가에서 피고 지는지
몰라


맨발 벗은 슬픔이
이 밤에
멀어져 간 나를 부르며
잠들기 전 한때 나를 적시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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