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개한테 배우다 - 복효근

마루안 2014. 4. 16. 19:51

 

 

개한테 배우다 - 복효근

 

 

동네 똥개 한 마리가
우리집 마당에 와 똥을 싸놓곤 한다


오늘 마침
그 놈의 미주알이 막 벌어지는 순간에 나에게 들켜서
나는 신발 한 짝을 냅다 던졌다


보기 좋게 신발은 개를 벗어나
송글송글 몽오리를 키워가던 매화나무에 맞았다
애꿎은 매화 몽오리만 몇 개 떨어졌다


옆엣놈이 공책에 커다랗게 물건 하나를 그려놓고
선생 자지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킥킥 웃었다가
폐타이어로 만든 쓰레빠로
괜한 나만 뺨을 맞은 국민학교 적이 생각나
볼 붉은 매화가 얼마나 아팠을까 안쓰러웠다


나도 모름지기 국가에서 월급 받는 선생이 되었는데
오늘 개한테 배운 셈이다
신발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고,


매화가 욕을 할 줄 안다면
저 개 같은 선생 자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복효근 시집, 마늘 촛불, 심지

 
 

 

 

 


꽃 앞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묻다 - 복효근

 

 
급한 김에
화단 한구석에 바지춤을 내린다


힘없이 떨어지는 오줌발 앞에
꽃 한 송이 아름답게 웃고 있다


꽃은 필시 나무의 성기일시 분명한데
꽃도 내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 할까


나는 나무의 그것을 꽃이라 부르고
꽃은 나를 좆이라 부른다

 


 

 

# 복효근 시인은 1962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전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문단에 나왔고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어느 대나무의 고백>, <마늘 촛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