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서운 나이 - 이재무

마루안 2013. 6. 22. 23:00



무서운 나이 - 이재무



천둥 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다
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
내 몸에 번개 꽂혀올까봐
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
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
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
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
그까짓것 이제 두렵지 않다
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
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



*시집, 몸에 피는 꽃, 창작과비평

 







북한산에 올라 - 이재무

 
 
내려다보이는 삶이
괴롭고 슬픈 날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정상에 이르러서야
사랑과 용서의 길 일러주지만
가파른 산길 오르다 보면
그 길이 얼마나 숨차고
벅찬 일인지 안다


돌아보면 내 걸어온 생의
등고선 손에 잡힐 듯
부챗살로 펼쳐져 있는데
멀수록 넓고 편해서
보기 좋구나


새삼 생각하노니 삶이란
기다림에 속고 울면서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것


한때의 애증의 옷 벗어
가지에 걸쳐놓으니
상수리나무 구름 낀 하늘 가리키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길 보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