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울한 다짐 - 강윤후
2월의 끝, 그것은 겨울의 끝인가
오래 잊었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나는 창문을 연다
안짱다리처럼 어기적어기적 내리는 비가
파리한 나뭇가지를 유심히 진맥하고
나는 묵은 유행가 한 자락을 들추며 고작
담배나 피운다, 얕은 처마 아래로
아직 젖지 않은 예감 막막해도
흐르는 세월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온몸 뼈마디마다 두껍게 녹이 슨다
그러니 바람이여, 내 목덜미를 어루만진들
등골까지 서늘해지겠느냐, 한 죽음의 기별이
메마른 기억의 벌판에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켜
밭은기침이라도 나오겠느냐
저 고단한 봄날은 일찌감치 희망을 압류하는데
겨우내 꿰매지 않고 지낸 호주머니의 구멍이 생각나
새삼 손가락 하나 허방에 빠진 듯 허전하고
공연히 높은 산 어딘가 버짐처럼 남았을 눈이나
떠올려볼 뿐, 정녕 하릴없이 헐거워져도
뼈아플 수 있다면
마지못해 기꺼이
기꺼이 살기로 한다
*시집, 다시 쓸쓸한 날에, 문학과지성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 강윤후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 부록이든 별책 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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