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리운 耳順 - 강연호

마루안 2013. 1. 31. 07:31



그리운 耳順 - 강연호



그는 청춘을 증오한다 그의 청춘은
등 돌린 애인의 집 근처 골목길에서
아직도 불 꺼진 창문을 기웃거리고 있는지
막차 끊기도록 돌아올 줄 모른다
기다리다 지쳐 우수는 우주보다 깊고
절망은 철망같이 따끔거리고
아픔은 하품처럼 흔해
이빨 닦을 때마다 치욕은 치약처럼
울컥 넘어온다, 간이 나쁜가
그는 자기도 건강 진단이 필요한 나이라고
서른 넘었다고 잠시 가벼운 걱정
그리고 덩컹거리는 몸이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
한 십년 끄떡없이 자갈밭이라도 달리겠지만
마음은 끝내 아귀가 맞지 않은 듯
뻑뻑거리며 내내 헛돌아간다
서른 넘어 그는 갑자기 이순이 그립다
너무 그리워 술 마시며 엉엉 운다
그가 울면 동료들도 슬퍼져서 따라 운다
한참을 울다 왜 우는지 몰라
일행을 놓친 철새처럼 모두 어리둥절해진다
그 새는 아마 제가 가는 길의 방향을
장님에게도 묻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일년만 기다리면 다른 철새들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므로
자기는 먼저 와서 오래 기다렸노라고
큰소리칠 것이다. 그는 이제
나이 서른 넘어 결정적으로 이순이 그립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싶다



*시집,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문학세계사


 






비단길 2 - 강연호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 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일생을 부둥켜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 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습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현자(賢者)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끌고 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때 명도와 채도가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 보려거든 잠시 눈물로 마음 덥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