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소 떼 울음소리 뒤의 저녁노을 - 서상만

마루안 2013. 1. 29. 06:00

 


소 떼 울음소리 뒤의 저녁노을 - 서상만



덩구덩 북소리가 섞여 있다, 가죽회초리에 뚜들겨 맞아
게거품 물고 바다는 미쳐서
갈기갈기 제 옷을 찢어발겨 흔든다
한 무리 눈알 부릅뜬 소 떼 울고 간 저녁바다 물결 위에
시뻘건 노을이 엎질러져 뉘엿댄다
수 만 번 불러도 말 못하는 것이 되어 끝없이 흘러가는
저 피 묻은 서쪽하늘,


또 날이 저문다, 푸른 묘등 위로 길이 저문다
수평선 멀리 굼실대는 돛배 하나, 또 다른 저녁을 향해
한 점 먹물로 번진
겁 없는 목숨들의 징징거림도 보인다


가끔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차갑게 식었다가, 바람에
스스로 제 몸을 맑히는 먼 불국의 목어처럼
간기에 젖어 눈멀어버린
백발의 파랑을 치다가 어느 뭍으로 스며들어
하얀 소금꽃이 되고 싶은,
덩구 덩덩 북소리 들리면
바라만 보아도 찔끔찔끔 눈물 나는
소 떼 울음소리 뒤의 저녁바다



*시집, 그림자를 태우다, 천년의시작








산이 되었다가 물이 되었다가 - 서상만



밤하늘 이슥해도 펑정을 잃고 저렇게
우 두 둑 뼈마디로 우는
드센 파도같이, 삶이 진정 영원할 것처럼
평생을 괜한 너스레만 떨다 가는 나의
사리바자너머 화엄의 파두엔
육탈된 한 재기 조각구름 홀연하고
숙주로 산 내 몸뚱어린 짐짓 푸섭벌레라
나무인양 잎사귀인양 철철이 몸 바꾸고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며
이승을 사는 법이 다 그렇다면서
눈 오는 벼랑에선 움츠려도 보고, 어둑새벽
서릿발 어린 바람 따라나서며
낯선 객사를 드나드는 길손이 되었다가,
봄 우레 뜸할 때 산이 되었다가 물이 되었다가







# 서상만 시인은 1941년 경북 포항 호미곶 출생으로 성균관대 영문과를 수학,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1982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시간의 사금파리>, <그림자를 태우다>, <모래알로 울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