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별까지는 가야한다 - 이기철

마루안 2013. 1. 5. 07:25



별까지는 가야한다 - 이기철



우리 삶이 먼 여정일지라도
걷고 걸어 마침내 하늘까지는 가야 한다
닳은 신발 끝에 노래를 달고
걷고 걸어 마침내 별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가 깃든 마을엔 잎새들 푸르고
꽃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로 핀다
숲과 나무에 깃들인 삶들은 아무리 노래해도
목쉬지 않는다
사람의 이름이 가슴으로 들어와 마침내
꽃이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쉰 해를 보냈다
미움도 보듬으면 노래가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반생을 보냈다


나는 너무 오래 햇볕을 만졌다
이제 햇볕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
별을 만져야 한다
나뭇잎이 짜 늘인 그늘이 넓어
마침내 그것이 천국이 되는 것을
나는 이제 배워야 한다


먼지의 세간들이 일어서는 골목을 지나
성사(聖事)가 치러지는 교회를 지나
빛이 쌓이는 사원을 지나
마침내 어둠을 밝히는 별까지는
나는 걸어서 걸어서 가야 한다

 


*시집,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민음사

 







따뜻한 밥 - 이기철



신발마다 전생이 묻어 있다

세월에 용서 비는 일 쉽지 않음을

한 그릇 더운 밥 앞에서 깨닫는다

어제는 모두 남루와 회한의 빛깔이다

저무는 것들은 다 제 속에

눈물 한 방울씩 감추고 있다

저녁이 끌고 오는 것이 어찌 어둠뿐이랴

내 용서받고 살아야 할 죄의 목록들

내일 다시 걸어야 할 낯선 초행길들

생은 사는 것이 아니라 아파하는 것이다

너는 몇 켤레의 신발을 버리며

예까지 왔느냐

나무들은 인간처럼 20세기의 오류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늦었지만 그것이 내 믿음이요 신앙이다

나는 내 믿음이 틀렸더라도 끝내 수정하지 않으리라

쌀 안치는 손의 거룩함을 알기 전에는

이런 말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되리라

생을 업고 일을 업고 가기 위해선

이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종교를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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