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을 산 - 김명인

마루안 2013. 1. 5. 07:17



가을 산 - 김명인



마침내 이루지 못한 꿈은 무엇인가
불붙는 가을 산
저무는 나무등걸에 기대서면
내 사람아, 때로는 사슬이 되던 젊은 날의 사랑도
눈물에 스척이는 몇 장 채색의 낙엽들
더불어 살아갈 것 이제 하나둘씩 사라진 뒤에
여름날의 배반은 새삼 가슴 아플까
저토록 많은 그리움으로 쫓기듯
비워지는 노을, 구름도 가고
이 한때의 광휘마저 서둘러 바람이 지우면
어디로 가고 있나
제 길에서 멀어진 철새 한 마리
울음소리 허전하게 산자락에 잠긴다



*시집, 머나먼 곳 스와니, 문학과지성




 




가을 강 - 김명인



살아서 마주 보는 일조차 부끄러워도 이 시절
불 같은 여름을 걷어 서늘한 사랑으로
가을 강물 되어 소리 죽여 흐르기로 하자
지나온 곳 아직도 천둥치는 벌판 속 서서 우는 꽃
달빛 난장(亂杖) 산굽이 돌아 저기 저 벼랑
폭포 지며 부서지는 우레 소리 들린다
없는 사람 죽어서 불 밝힌 형형한 하늘 아래로
흘러가면 그 별빛에도 오래 젖게 되나니
살아서 마주 잡는 손 떨려도 이 가을
끊을 수 없는 강물 하나로 흐르기로 하자
더욱 모진 날 온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