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는 슬픔의 방식을 눈물로 바꾸는 거예요 - 이기영
흐느낌과 어깨의 떨림을 돋보기처럼 볼록하게 터질 듯 위험수위를 견디는 눈물은.
서툰 방향 사이에서 끊임없이 점멸하는 신호등을 건너 마침내 굳게 선 결심을 따라가는 눈물은,
좋은데이를 몇 번이나 지나야 쓸쓸한 위장을 모두 속일 수 있는지
내게 주어진 슬픔만큼만 탕진하고 나면 까마득하게 사라지는지 명랑하게 잊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온 힘을 들여 밀어내는데도 계속해서 또 다른 감정이 생겨나는 표정 속에 뒤섞이고 마는 이 완벽한 한 방울의 통증,
아, 무섭도록 일반적이다
*시집/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 걷는사람
유월의 숲 - 이기영
너무 멀어 몸을 던질 수조차 없던 시퍼런 바닷물 속에 서둘러 반짝거리고 알아서 일렁이던 눈빛이 있었다 서툰 간잽이가 휙휙 뿌려 준 소금처럼 빛나던 산호초 사이에서 산란하는 보름밤이었다
나무 그림자는 겨우 몸을 숨길 수 있는 어둠이어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길도 내지 않는 유월의 숲에 나는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묻었다 울 수 있는 자리가 거기뿐이었다
간절하지 않은 것들은 조금도 더 간절해지지 않아 추웠다
이미 간절해진 것들은 더 간절해져서 몸을 떨었다
지나가 버린 것들과 오지 않은 날들이 억장이 수만 번도 더 무너져 내린 몸을 열고 눈물을 닦았다
절망이 절정일 때였다
# 이기영 시인은 전남 순천 출생으로 2013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인생>,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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