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픔을 줄이는 방법 - 천양희

마루안 2021. 6. 15. 19:32

 

 

슬픔을 줄이는 방법 - 천양희


빛의 산란으로 무지개가 생긴다면
사람들은 자기만의 무지개를 보기 위해
비를 맞는 것일까

빗속에 멈춰 있는 기차처럼
슬퍼 보이는 것은 없다고
까닭 모를 괴로움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시인 몇은 말하지만

모르는 소리 마라
오죽하면
슬픔을 줄이는 방법으로 첫째인 것은
비 맞는 일이라고 나는 말할까

젖는 일보다 더 외로운 형벌은 없어서
눈이 녹으면 비가 되는 것이라던
선배의 말이 오늘은 옳았다

빗소리에 몸을 기댄 채
오늘 밤
나는 울 수 있다
전력으로

 

 

*시집/ 지독히 다행한/ 창비

 

 

 

 

 

 

견디다 - 천양희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황새와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 낙타와

일생에 단 한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새와

백년에 단 한번 
꽃 피우는 용설란과

한 꽃대에 삼천 송이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과
물 속에서 천일을 견디다 
스물다섯번 허물 벗고
성충이 된 뒤 
하루 만에 죽는 하루살이와
울지 않는 흰띠거품벌레에게
나는 말하네

견디는 자만이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토록 견디는가

 

 

 

 

*시인의 말

 

머리에서 가슴까지

참 먼 길이었다

그 길이 나를 견디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