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는 누구인가 - 박영희

마루안 2021. 5. 3. 21:42

 

 

나는 누구인가 - 박영희

 

 

유년의 토방에서, 혼자 소꿉놀이하다 사금파리 조각에

베이던 순간 방글거리는 햇살과 유일한 장난감에

느꼈던 배신감 아직도 여린 쓰라림이다

사춘기 시절, 맞받아쳐줄 반사 벽이 없어

변변히 반항도 못 해보고 웃자라버린 영악성이

스스로 가여운 내밀한 쓸쓸함이다

빛 눈부신 청춘, 이었노라고 우쭐거릴 수 없는

올라가기 힘든 나무에 사다리도 걸쳐보지 못한 앙금

이따금 신물이 되어 오르내리는 울렁임이다

유치한 채로 사람살이의 진실이 담긴

유행가 가사처럼,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챙겨줄 "살뜰한 당신" 하나 숨겨놓지 못한 숙맥이다

남들보다 잘 달리지 못하고, 이쯤에서 문득 뒤돌아보니

이쪽저쪽 감당해야 할 책임만 잔뜩 걸머진 채

오도 가도 못 하는 노을빛 아득함이다

때때로 일탈을 꿈꾸며 나른하게 울어보고 싶어도

눈물샘마저 마르는 건조한 나이를 살고 있고, 살아내야 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터널에 갇힌, 울어지지 않는 울음이다.

 

 

*시집/ 한사코 아득한/ 달아실

 

 

 

 

 

 

해질녘은 눈물이다 - 박영희

 

 

그럴싸한 명분으로

힘껏 밀어올린 아침의 설렘도

 

중심을 잡으려고

한사코 용쓰던 한낮의 웃음기도

 

서서히 붉어오는 노을 앞에

그만 무릎 꿇는 하루의 끌탕

 

천둥벌거숭이 같던 젊은 날도

대책 없이 늙어버린 지금도

 

해질녘은 늪이다.

 

 

 

 

*시인의 말

 

외롭다, 섬처럼

마음과 몸을 의탁한

시공(時空)에서

낯가림에 둘러싸여

 

눈물겹다, 학처럼

반복되는 사역(使役)

황제 같기도 거지 같기도

 

그럴싸하지 못한

어제, 오늘을 걸머지고

내일까지 탐(貪)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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