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면 - 정충화

마루안 2020. 11. 26. 19:21

 

 

불면 - 정충화

 

 

소리로 깨친 사람을

귀명창이라 한다지

요사이 전에 없이

귀가 밝아졌다

 

들끓는 소리들이

밤의 중문을 열어버린 뒤부터

내 잠은

만 리 밖 타향이다

 

밤과 나 사이

공명의 진폭이 얼마나 젊기에

차차로 어두워져야 할 내 귀가

아직도 이리 밝은 것이냐

 

 

*시집/ 봄 봐라, 봄/ 달아실

 

 

 

 

 

 

불면 2 - 정충화

 

 

대팻밥처럼 얇디얇은

잠의 부스러기마저 흩어지자

나의 밤은 항로를 잃어버렸다

 

닻 내릴

작은 섬조차 보이지 않는

난바다에서

끝없이 표류 중이다

 

잠의 몰골로 이끌어줄 예인선은

올 기미도 없고

고장난 배의 갑판에서

애꿎은 시간만

꾸들꾸들

말라비틀어지는 중이다

 

 

 

 

*시인의 말

 

충주,

이 고을에 세 들어 산 지

어언 십 년이다

그간 쌓은 정만도 서 말은 넘을 게다

식물을 들여다보고, 길을 걷고,

이곳 방언을 익히며 살다보니

어느 세월에 이순을 넘어

그새 해거름녘에 다다랐다

이제 저녁이 있는 삶을 찾을 나이에 이르렀는데

그 삶을 어디서 찾을지

캄캄하다

 

식물 애호가를 자처하면서

근자에 나무 한 그루도 심지 않은 주제에

설익은 활자를 입히겠다고

나무에게 또

죄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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