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발목 - 조우연

마루안 2020. 11. 16. 21:47

 

 

발목 - 조우연

 

 

오거리 횡단보도 옆에서 밥상장수가 밥상을 팔고 있다

개다리소반부터 교자상, 고족상, 두리반까지

짧고 굵은 상다리부터 길고 매끈한 상다리가

가로수 아래 꼿꼿이 중심을 잡고 섰다

식탁에게 쫓겨나 길거리에 나앉은 발목들

어둑한 저녁 밥상

자근자근 말대가리가 물이 오르면

어김없이 밥상부터 날아갔던 가난한 시절

찰과상으로 버틴 뚝뚝한 밥상 발목을 닦아 세우며

눈물 흥건한 소반다듬이를 하던 어머니들

가슴속 벌레 먹은 콩을 밤새 골라냈는지 모른다

요기 때가 되면

접었던 발목을 차례로 잡아 펴고

밥그릇 대신 책을 펴고 앉던 발목들은

밥상머리들이 비대해져 예의 겸양해지던 때가 있었다

화롯불 같던 둥근 온기가 사라진 식탁 아래
발목은 굽힐 줄 모르는
버릇의 부재

바닥으로부터 가깝고도 낮은
소반 한상 차림
상다리가 부러져라 잡아당겨
다시금 발목에 힘주어 보고 싶다


*시집/ 폭우반점/ 문학의전당

 

 

 

 

 

 

위신 - 조우연

 

 

청동기시대 권력자들은 비파형 청동검을 허리에 폼 나게 차고 구리거울을 몸에 거는 것으로 위신을 세웠다 한다. 그들은 죽어서도 육중한 고인돌 밑에서 썩어가며 두고두고 위신을 지켰다.

 

지금 어느 단군 후손은 왼쪽 가슴에 금배지를 달기도 하고 지갑에서 손바닥만 한 증을 꺼내 보여주기도 한다. 그걸 보는 아버지를 보면 번쩍거리는 구리거울을 쳐다보던 없는 자들의 녹슨 눈빛이 상상된다. 기분이 구리다.

 

큰 소리를 지르고 상을 엎는 것으로 위신을 세우던 앞집 영래 아버지, 그런 게 위신입니까, 보란 듯이 영래는 벤츠를 끌고 나타나 엄마와 여동생을 태우고 갔다. 벤츠 바퀴가 기하학적 멍 자국을 남기며 가벼렸다. 그러는 영래 기분도 구렸을 것이다.

 

위신은 무엇으로 세워지나. 비싼 장신구 하나 없는 우리 엄마나 이태석 신부 같은 사람들의 위신 세우는 방법을 생각하면 구린 기분이 환해진다.

 

그럴듯한 구리거울이 내겐 없다. 세상 그 어떤 거울보다 맑은 아이들이 선생님, 하고 날 불러주니 그나마 그게 내 위신재일까. 내세울 위신이 없을 때 쓸데없이 많이 웃는다. 웃다가 문득, 아, 그래서 정치인들이 금배지를 달고도 쓸데없이 웃는 거구나. 이런, 구린!

 

 

 

 

# 조우연 시인은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살고 있다. 2016년 <충북작가>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폭우반점>이 첫 시집이다. <시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