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중랑천에서의 일박 - 박형권

마루안 2019. 7. 16. 21:30

 

 

중랑천에서의 일박 - 박형권

 

 

불판에 올려놓은 대패삼겹살처럼 줄줄 땀이 흘러내리는 여름밤

착한 마누라와 몸 맞대는 것도 더워

돗자리 챙겨들고 천변으로 나갔지요

밤낮을 잊은 나팔꽃 우듬지에서

칠 칠 칠 밤 벌레가 울고 달은 야참을 먹는지 볼록 배가 불렀어요

나도 가져간 캔커피를 따서

목을 축이고

두 날개를 쫙 벌리고 드러누웠어요

흠, 물비린내 좋고

어디서 휙 휙 낚싯대 후리는 소리, 서울이 나하고 정들려 하였어요

그런데 저 건너 아파트 불빛은 왜 저렇게 멀어 보이나요

한여름 달빛처럼 하얗게 알궁둥이 까고

중랑천 찬물에 뛰어들지 못하나요

꼬르륵 꼬르륵 참개구리가 운 것 같고

소쩍새도 운 것 같고

밀양 얼음골도 다녀간 것 같고

꿈꾸기에 따라 무주 구천동인데,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불을 끄더군요

조금은 외로웠지만

뭔가가 한없이 그립기도 하였지만

옥잠화처럼

이슬이 마를 때까지 누워 있다가 밥때 맞추어 돌아왔지요

 

 

*시집, 우두커니, 실천문학사

 

 

 

 

 

 

귀소(歸巢) - 박형권

 

 

일흔을 넘긴 어미가 오십 앞둔 자식의 저녁 간식을 가져와서
다 먹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바라봄으로 하여 밤 벌레가 노래하고
작은 별들은 어미 젖 만지러 은하수를 건너갔다
알고 보면 어미도 새끼들이 건너야 할 강
다 건너서 뒤돌아보며 울어야 하는 강
내일 아침 마산발 서울착 아홉시 십분 새마을호를 타야 할 아들은
요즘 이가 시원찮다며 먹다가 만다
어미의 치통이 독한 진통제를 먹고 잠든 다음 날
아들은 벌써 중랑천 둔치 길을 걸으며 조류도감에도 실리지 못한 새들의 이소를 본다
빳빳한 깃털이나 뾰족한 부리를 보면 이미 어른 새가 되었는데
어미 새는 떠나지 못한다
다 큰 것이 삐이삐이 어미를 부른다
마산에서 서울까지 귀를 열어두고 있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