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동갑 - 전윤호

마루안 2019. 7. 16. 19:48



동갑 - 전윤호



서로 혼자라
술집서 인사한 사이
검은 테 안경에 하얀 얼굴이
용접공이라네


고온의 불꽃에 함부로 눈 뜬 죄
우린 죄목도 같군


모든 노래를 비틀어
뽕짝으로 바꾸는
저 간지러운 가수의 노래에 건배


동갑이 좋은 건
기막힌 세월 어디부터 미아였는지
따져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


내 더 취하면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말들도
기억 속에 단단히 용접해주길
건배



*시집, 봄날의 서재, 북인








빈대 - 전윤호



대학 동기 상빈이는
별명이 빈대였지만
얼굴은 희고 입술이 붉어
여자로 보이기도 했지


군인들이 대통령 하던 난세
진짜 사내로 만든답시고
담배 가르치고 술 먹이고
침 뱉으며 욕도 하게 했지


유인물이 벚꽃처럼 날리던 봄날
교수는 복도에 앉은 사복경찰이 두렵고
시험 거부 외치던 우리는
옆에서 박수 치던 동기도 믿지 못했네


친구 엄마 조문하러 모였을 때
수상한 사업가가 된 왕년의 투사들이
그래도 박근혜가 낫지 하며
귓속말로 선거운동하더군


미안하다 친구야
사실은 우리가 빈대였구나
길길이 뛰며 잘난 척해도
세상에 피나 빠는 해충들이었구나


세상에 창궐하는 저 흡혈충들
문득 등이 가렵거든
주소록을 지워버리렴
빈대는 배워도 빈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