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근황 - 정영

마루안 2019. 6. 11. 19:23



근황 - 정영



부음을 들은 밤 택시를 탄다
거리엔 떠도는 야회의 무리들
살점 같은 불빛에서 오래전 애인이 합승한다
축축한 뒷자석에서 그의 영혼이
날 알아보곤 차창을 빠져나간다
거리에선 잡을 수 없는 손들이
택시를 잡으려 허공에 달라붙는다
빗물을 끼얹고 날 태운 택시는 달린다
이제 더는 합승을 할 수 없다는 듯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듯
지하 영안실에 잠시 멈춘다


모여앉아 술을 찾는 친구들 조의금을 내는 선배들
육개장을 비우고 지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그들이 거리에서 아직 뜨끈한 손 휘저을 때
날 태운 택시는 전속력으로 강을 거슬러오른다
중앙선이 환하게 펼쳐진다
오래도록 그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일까
경유해야 할 곳이 아직 많다


지난봄, 산에서 만난 지게를 맨 노인이 어깨를 툭툭 친다
어여 앞서 가
그래야 내가 갈 것 아닌가


그들은 아직 택시를 잡기 위해 생의 가장 밝은 부분에 서 있다



*시집, 평일의 고해, 창비








병든 길 - 정영



세상의 모든 길은 혼자여서
세상 모든 길 위의 사람은 다 맨몸의 혼자여서
눈을 감고 뛰어다닌다, 햇빛아!


저 길은 옛집 가는 길만 같고
아무래도 끊긴 이 길은 도량(道場) 가는 길만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