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에 관심을 둘 때가 있었다. 간결하면서 의미심장한 묘미명에 감탄하기도 했다.
무덤이 있어야 묘비명도 있다. 가끔 걷기 여행길에 무연고 무덤을 만날 때가 있다. 원래는 임자가 있었으나 조금씩 잊혀지다 버려진 무덤이다. 그런 광경을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느낌이 쓸쓸함이다. 그리고 씁쓸함이 밀려온다.
예전에 내 친구의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연히 술이나 한잔 하자는 전화를 했다가 그날이 장모님 제삿날인데 집으로 오란다. 그녀의 사연을 알고 있기에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그 친구 집엘 방문했다.
친구들 중에서 그 놈이 가장 마누라 복이 많다는데는 이의가 없다. 고졸인 친구에 비해 대학을 나왔고 얼굴 예쁘고 살림도 알뜰한데다 음식 솜씨 또한 정말 좋았다. 단 하나 그것을 약점이라 하기는 뭐하나 혈육이 없다는 것이다. 친구가 장모님 제사를 모시는 이유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살다 돌아가셨다. 그 친구와 결혼하기 전이다. 그때 친구 아내는 어머니를 화장해서 강가에 뿌렸단다. 그래서 무덤이 없다. 그 얘기를 하며 눈물이 약하게 고이던 친구 아내의 얼굴이 생각 난다.
그때 내가 그것도 위로랍시고 매년 벌초하고 돌봐야 하는 것이 수고로움인데 훗날 돌보지 않아 잡초 무성한 버려진 무덤이 될 염려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지금 보니 그 말이 맞다. 있는 무덤도 파헤쳐 유골을 수습해 화장해서 뿌리는 경우도 있고 수목장으로 모시는 경우도 있다.
실존하는 무덤이 없는 경우다. 이런 장례 풍습을 지향한다. 버려진 무덤을 볼 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일찍부터 수목장으로 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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