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이 두고 간 이별에 대한 이야기 - 김재진
한 줄의 문자, 한 줄의 눈물에도
가슴 조인다.
꽃 필 때는 숨을 죽이라고
사랑할 땐 사랑을 조심하고
이별할 땐 다만 헤어질 뿐
이별이라 하지는 말라고
숨 죽인 봄이 꽃에게 말한다.
봄이 두고 간 프리지어 묶음을
벽 위에 매다는 날
매달린 사람처럼 불안한 마음을
괜찮다, 괜찮다고 어루만지는 날
헤어져도 괜찮다.
이제 더 만날 수 없어도 괜찮다.
만날 수 없을 뿐
다시는 볼 수 없다 말하진 말자.
슬픈 문장이나 슬픈 생각은
떠올리지 말자.
압정으로 꽂아놓은 꽃묶음처럼
산다는 것은
물기 빠져 사막같이 메말라 가도
아름답던 한순간을 지키고 견디는 일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상실을 예비하니
괜찮다, 헤어져도 괜찮다.
내 곁을 떠나 멀리 가도
아프지만 않다면 괜찮다.
*시집, 산다고 애쓰는 사람에게, 수오서재
미안하다 - 김재진
미안하다 아들아, 오래 누워 있어서.
얼른 가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바깥엔 몇 번이나 계절이 지나가고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어머니는
입술을 움직인다.
봄이 와도 미안하구나. 가을이 와도 미안하구나.
계절 바뀌는 것도 송구하다며
안 가고 오래 살아 죄인 같다며
떨어지는 꽃잎처럼 물기 다 빠진
입술 달싹거려 사죄한다.
어머니 가시던 날, 내리던 비 그치고
화장터 가는 차 속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꽃에게 미안하다. 풀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산다는 건 알고 보니 미안한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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