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왼쪽이 오른쪽에 서다 - 정의태

마루안 2019. 5. 20. 19:45



왼쪽이 오른쪽에 서다 - 정의태



누구세요?
내가 네 애비란다
애비도 애비 나름 아니던가요? 의붓아버지!
애비말을 안듣겠다는거냐?
듣긴 해야죠 허지만
허지만 무엇이냐?
여자로서는 애비말을 못듣지요
네가 여자라는 것이냐?
아니라는 건가요?
넌 내 딸이야
그런가요? 그럼 왜 이 지랄이죠?


애비의 오른쪽에 판사가 있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처벌을 원치 않아 무죄란다
어라?
왼쪽인가



*시집, 세상의 땀구멍, 도서출판 전망








왼쪽이 아프다 - 정의태



왼쪽이 아파요 아프다구요 산길 내달으며
소나무들이 아우성친다
소나무에게 왼쪽이 있었나 숲에게도
달빛의 오른쪽은 어디인가 내 왼쪽은 늘 비어 있다
어째서 우리의 다리는 왼쪽이 긴가
그래 퇴행성관절염이 왼다리로 먼저 온다는 거지 솔숲 때문이야
핑계도 늘 왼쪽이 아프다 힘센 자들의 오른팔들이 아픈 것 봤냐고
그들은
아프기 위해 오른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네가 몰라
어떨까 오른쪽 때문에 아프다는 말 내세우지 못할 말
나는 오늘도 운동장 트랙을 왼쪽으로 돌고 있다
우측통행 시행 후는 양쪽
모두 아프다
꽃잎들은 제멋대로 떨어진다 그들이 떨어지는 곳
지구의
왼쪽인가
아니야 오른쪽이야






# 나는 오른손잡이다. 어릴 적에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야단을 맞았다. 무의식 중에 오른손이 정석이라 여기게 되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만 세상은 오른쪽을 강요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조금씩 왼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오른손을 쓰지만 왼쪽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인의 시를 하나 더 올린다.





한 쪽 - 정의태



구름 위에는 늘 햇살이 있다
그렇더라도
햇살 아래 늘 있는 구름은 아니다


구름 곁에는
구름만 있다


햇살 곁에는 햇살이 없다


오른쪽에는 왼쪽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