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 - 김주대
덥석 물었다가 뱉은
마른 풀 같은 외할머니의 젖과
설탕물 넘어가는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던 울음소리가
몸의 바닥에서 올라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목숨 깊숙이 쟁여졌던 배고픔이
부유물처럼 떠오르는 밤에도 엄마는 오지 않았고
외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개구리 같은 손주의 배만
하염없이 쓰다듬었다고 한다
지구가 태양을 마흔다섯바퀴나 돌고
파도가 해안을 천만번 때린 시간이 지나도
눈물은 기억의 바다에서 올라와
주린 눈가를 적신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젖이
마른 풀처럼 씹힌다
기억은 내장과 근육과 뼈에 숨어 있다가
배고플 때 틀림없이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장담한다, 내가
온몸에 번지는 눈물의 냄새로 한번도 어른이었던 적이 없음을
오로지 배고파서 울었지 사랑 때문에 운 적이 없는
그것이 늘 미안하다고, 食구들아
*시집, 그리움의 넓이, 창비
수축된 우주 - 김주대
나의 고대(古代)는 빛이었다
거대한 번개와 함께 흩어진 기억들이
우주의 깜깜한 하늘에서 달려와
한 지점으로 수축될 때 나는 탄생하였다
나는 조립이 아니라 뜨거운 체온으로
꽃처럼 피어난 살이다
고대의 세속에서 나는
가녀린 박동이었다
피부가 느끼는 것보다 빨리 육신이 된 시간과
내부로 이동하는 물질의 소리들이 모여
입을 열고 말이 흐르기 시작했다
심장의 한가운데서 솟아오른 말은
나보다 일찍 죽은 아버지의 썩은 살에
물이 고이고 풀이 자라듯 거침없이 문장이 되었다
눈물이 비처럼 내리고
시간의 지배자가 시간의 밖에서
흐르는 빛을 오해할 때
나는 시간과 함께
목숨의 영원한 끝으로 가고 있었다
닥쳐온 겨울은 길었고 문장은
꽃가루와 함께 발굴되기 위해 퇴적되었다
나의 고대는 내 속으로 사라진 빛
나로부터 멀어져 내게로 온 먼 시간에서
한 지점으로 수축된 우주다
나는 날마다 내 속에서 태초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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